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고난도 하나님이 원하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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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나님의 뜻이겠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픈 질문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지는 것도 원하셨다는 뜻일까요?

그 질문을 믿음 없는 말이라며 밀어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싶은데, 지금 겪는 일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노진준 목사의 잘잘법 강연은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아내려는 질문과, 오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묻는 질문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 실패하지 않을 길일까?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고민할 때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소중합니다. 다만 그 안에 “어느 쪽을 골라야 손해를 보지 않을까요?”라는 마음이 섞여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편안한 길을 바라는 마음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아프지 않고, 크게 후회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정해진 정답 하나를 찾아내는 일’로만 생각하면,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길을 잘못 골랐나. 기도를 충분히 하지 않았나.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해서 벌을 받는 걸까.

어려움이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 그 선택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모두 알 수 없고, 일이 힘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원인과 하나님의 의도를 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감추어진 일을 알아내기보다, 드러난 말씀을 따라 살기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신명기 29장 29절 일부, 개역개정

이 구절은 모압 땅에서 언약을 세우는 문맥에 있습니다. 말씀의 끝은 이스라엘과 그 자손이 계시된 율법을 행하는 데로 이어집니다. 본문의 무게는 모든 비밀을 밝혀내는 능력보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말씀에 응답하는 삶에 놓여 있습니다.

노진준 목사는 이 구절을 오늘의 선택과 고난에 적용하며, 알 수 없는 계획을 알아내는 데만 매달리기보다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도록 권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언약적 의미에서 출발한 설교의 적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내일의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오늘 정직해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모든 문제가 언제 풀릴지는 몰라도, 곁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은 조금 더 구체적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반드시 성공할까요?”에서 “이 상황에서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정직한 선택일까요?”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강연에서 제시하는 또 하나의 구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세상의 고통을 함께 생각하기 위한 신학적 설명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믿는 것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과 고통을 하나님이 좋아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이 구분을 다른 사람의 고난에 손쉬운 설명으로 붙여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너를 훈련하시려고 그러신 거야.” 그 말이 어떤 이의 고백일 수는 있지만, 우리가 타인의 아픔에 대해 하나님의 이유를 대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정직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모름 속에서도 곁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왜 저 사람에게?’라는 질문 곁에, ‘나는 무엇을 할까?’를 놓기

고난의 이유를 묻는 마음을 억지로 멈출 필요는 없습니다. 슬픔과 질문이 남아 있다고 해서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타인의 아픔 앞에서는 질문 하나를 더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겪는지 설명하는 대신, 지금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연락 한 통을 보내고,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나누는 것. 이런 작은 행동 안에서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상의 한 모습으로 제안하고 싶습니다. 고통의 원인을 안다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고통받는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것입니다.

모르는 내일 앞에서, 오늘 할 수 있는 사랑

우리는 모든 선택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지나온 고난의 의미도 전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답을 얻어야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도움을 청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을 돌보며, 지금 할 수 있는 정직한 한 걸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가, 오늘 내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할지를 묻는 기도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이 질문이 고난을 쉽게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알 수 없는 이유 앞에서 멈춰 선 우리에게, 오늘 할 수 있는 응답을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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